우렁각시 이야기

숨겨진 이야기

울프조 2006. 6. 22. 10:06

 

올해는 집 주변에 뽕나무들이 열매가 하얗게 변하는 병을 하고 있어

오디를 제대로 먹을수가 없다
그래도 자주 뽕나무를 찾아가 손과 입안이 피빛이 되도록 맛있는 오디를 따먹는다

오디를 따먹으면...아주 가끔씩...숨겨진 빛바랜 기억이 되살아난다

 

 

살아오면서 지난 일들 중에 그냥 묻혀져 버린 ...
아무도 그 일에 대하여 묻지도 않고 나 역시 그 일을 입밖에 내지않았던 한사건을 떠올려본다
오래된 일이기에 이제는 그 일이 허물도 상처도 되지않게 아물어 있다 
물론 나의 아픈이야기를 하기엔 아직 블로그는 믿음직 하지않아 망설이곤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 그 일을 물어온다면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눌수있게 치유가 되어있다

 

내 나이 스무몇해 쯤 이었나보다
가장 열심히 앞날을 위해 펄펄뛰는 열정으로 꿈을 성취하려 싱싱하게 살아가야할 무렵
나는 시든꽃처럼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내 첫 연인으로 자리했던 아버지의 상실이 그동안 쌓아오던 모든것들을 앗아가 버린것이다
내 등을 받쳐주던 굳건한 기둥이 쓰러지자 나도 함께 그 더미속에 묻혀버렸다
물론 나는 안간힘을 쓰며 발버둥을 쳤다... 다시 예전의 내 모양을 되찿기위해서 ...
내 의지가 강할수록 나를 누르는 장애물의 힘은 더 강하게 나를 밀어뜨렸다

 

더 이상 내의지는 내가 찾는 세상의 빛을 바라보길 포기하고 시든 나날의 연속으로
내삶이 아닌 다른이의 삶을 살아가듯... 소가 고삐에 끌려다니듯...

암울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가족의 경제적 가장이 되어 직장일을 하고 있을때 였는데 ...
일을하다 갑자기  벌떡 벌떡 일어나 나도 모르게 문밖으로 걸어나가곤 했었다 
내가 왜 이렇게 있을까 ... 더 이상 내가 아닌 나로 살고싶지않아 ...그러던 어느날
세상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으로 더이상 견딜수가 없자

직장에 사직서를 써두고 엄마에게 짧은 편지글을 남겨두고...

평소의 출근때처럼 집을 나왔다

 

첫눈에 보이는 시외버스를 타고가다  산이 깊은곳에 이르자

그곳에 내려 개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몇몇의 인가가 보였고 제법 큰 절이 있는 경내를 지나 개울을 따라 산속으로 계속 들어갔었다
아무도 오지않을 개울가에 앉아 물속에 손을 담그고 준비한 면도칼을 꺼내어
손목 가까이 가져가자 ...두려움이 몰려와 몸을 꼼짝할수 없게되자...울기 시작했다
울다가 지쳐서 그 자리에서 오래도록 잠이 들었다
그 깊은 산속에 비행기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곤 하였다

 

눈을 뜨니 희뿌연 빛이 남아있는 저녁이 되어있었고
멀리 산허리에 반짝이는 빛이 보이는듯하여 무작정 불빛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산속으로 얼마를 갔을까... 허물어진 빈집들이 하나 둘 보이고 불빛이 있는 집을 찾아들었다
그 집엔 나이든 부부가 마침 저녁밥상을 차려놓고 있어 우선 밥을 얻어먹고
나의 몰골에 무엇을 감지하였는지 많은것을 묻지 않았다
자신들은 산에 나무를 잘라내는 사람들을 위해 밥을 해주기위해 잠시 이 산속에 와있다며

맞은편 산허리에 기거할수 있는 집이 하나 있으니 그곳으로 가서 지내라며 데려다 주었다

그 산속엔 그들 노부부외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았기에
가방속을 뒤져 지갑안에 있는 돈을 남김없이 그들에게 건내주었다
있을동안의 밥값이라며...

 

내가 있을 곳은 간혹 꿀을 뜨는 한철... 사람이 잠시 다녀가는 집으로

방안 흙벽아래에  얼룩지고 빛바랜 신문지로 도배가 되어진

그나마 사람의 온기를 느낄수있는 공간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긴머리를 빗도없이 대충 줄줄 땋아서 늘어뜨리고
개울건너 맞은편 산골짝 밥집으로 밥을 먹으러 가고... 온종일 산속을 헤매이곤 했다
해가 저물어 오면 다시 밥을 먹으러 가고 ...밤이 일찍오기에 문을 열어두면 밤빛이 환하여
검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지내는 멍한 시간들이 천국처럼 평온하게 느껴지는 시간 시간들이었다
 
세상의 무엇도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그저 무아의 경지에 이른듯 아무런 생각도 나지않았다 
천둥번개가 치는 밤에도 삐꺽이는 문을 활짝 열어두고 온 세상이 갑자기 환해지는

번쩍이는 불빛에 소나기의 선명한 빛줄기를 바라보며 ...그 몽환적 풍경들에 넔을 잃곤하였다
비오는날은 마당에 어김없이 커다란 두꺼비가 나타나 비를 맞고 있었다
그때는 깜깜한 밤의 무서움도 느낄수가 없었다     
산을 헤메다 뽕나무에 달려있는 오디를 정신없이 따먹고 피빛으로 변한 손을

개울가의 모래에다 비비고 작은 물웅덩이를 만들어 거울이 되게하여

피빛으로 범벅이 되어있을 흐린얼굴을 바라다보곤 하였다

그렇게 하염없이 멍한 시간들이... 지금도 알수없지만 엿새인지 이레가 지났을때쯤...

 

방문이 열리면서 어떤중년의 여인이 엎어지듯 쓰러져 몸부림치며 울기시작하는 것이었다
이곳에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왔구나...하며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으니
여인은 내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가와 나의 손을 잡는데... 엄마였다
어떻게 엄마가 .... 이곳 까지 ... 나 자신도 여기가 어딘지 모르는데 ....
"너까지 내 가슴에 못을 박으려 하냐"며 손을 이끌어 내셨다 ..그 불가사의는 ...
엄마의 꿈속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타나 어느 절로 빨리가 딸을 데려오라 하셨단다
그런데 절에서도 나를 찾지못하여 걸어나오다 절 어귀 작은구멍 가계에서
내가 지나가는것을 보았다는 사람이 있어 다시 길을따라 포기하지않고
끝까지 오게되었다고 하셨다

 

밥집의 고마운이들에게 인사를 한후 엄마와 함께 되돌아 나오는데
내가 어떻게 이 먼길을 걸어왔을까 싶게 기나긴 힘든길을 엄마와 둘이 걸으며
엄마의 어린시절과 아버지를 만나 결혼후의 엄마의 인생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여자란 무엇보다 남자의 그늘 아래에서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며...
이제 남자를 만날 나이가 되었다며 결혼을 제의하셨다
돌아온후 얼마 지나지않아 나의 삶에 다른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고   
이후 아무도 나에게 이 일에 관하여 묻지도 아는체도 않으며 있지도않은 일처럼 묻혀져 갔다
그러한 배려에 나의 가족과 주변이들에게 감사한다

 

 

오늘은 내 젊은날 잠시동안의 세상 도피이야기를 내려놓았다
살아오면서 가끔...죽고싶을 만큼은 아니지만 많이 힘이 들땐
또다시 이러한 도피를 꿈꾸어 보곤한다
그것은 나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산소통처럼 나에게 안식과 피안을 가져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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