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오면서 나의 감성에 두번째로 영향을 미친분이 계시다
첫번째는 당연히 나의 아버지이시고
두번째는 나를 딸처럼 챙겨주시던 여학교 시절의 미술선생님이시다
여중생이 되어 ...
작은 소도시에서 그 시절 드물게 초등때부터 피아노를 배운덕에
교내 음악경연대회가 있으면 반주를 하고 청음력이 뛰어나다 하여
꼭 음악을 전공하라는 음악선생님과 친하여
특활시간에는 음악반에서 활동을 하고 있으면
어김없이 미술반 선생님이 데리러 오시는 것이다
미술선생님은 나이도 많으시고 학교내 파워가 강하시기에
나를 아끼시던 음악선생님도 입 내밀고 바라만 보시고
사생대회에서도 상을 많이 받아 나 자신이 그림을 잘그린다는 자부심에
결국 미술반으로 이적을 하게되었다
다행히 미술선생님과의 인연이 좋아서인지
전국의 미술대회를 휩쓸고 다녔고 미술부의 활동은 날로 번창하여
여중여고의 6년간은 꽤나 눈부시게 화려한(?) 성적을 남겼다
수업중에 멀리서부터 다른반의 교실문이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도미노처럼 차례로 복도에 울려 퍼지면
우리반 수업중의 선생님이 나에게 눈을 주며 빨리 나가보라고 하지만
창피하고 화난얼굴로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모른척 버티고 있으면
우리반의 교실문이 열리며 "여기 내 딸 있나?" 나를 찿는 미술선생님의 목소리에
아이들이 까르르르 웃음보를 터뜨린다
아무리 내가 몇학년 몇반이라고 일러도 외우지를 못하시고
내리 육년간을 이러한 모습으로 나를 찾으셨다
예술은 아름다운 마음속에서만 태어남으로 사물을 아름답게 보고
고운마음과 넘치지 않는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그림을 그리기 전 항상 들려주셨다
자연속에서 그림을 그리며 선생님의 지도를 받고
선생님의 그림작업도 따라다니며 익히고
또 예술분야 전체단체장을 하시기에 모임이 있으면
어린 나를 불러내어 그 분야의 많은 분들의 정서를 익히게끔 해주셨다
반짝 재능이 있어보였던 나는
선생님의 자랑이였고 꼭 우리의 화단을 이끌고 가라는
큰 포부를 안겨주시며 꿈을 키워주셨던 나의 선생님
후에...그림을 계속하지않게 되자
선생님의 큰 기대에 실망을 안겨드릴까봐
선생님을 찾아뵙지 못하게 되었다
선생님이 대학강단에도 계시다 모두 다 접고
전업 향토작가로써 그림작업에만 열심이라는 소식과
나의 근황을 궁금해하고 보고싶어 하신다는 소식을 종종 접하였다
십여년이 지난후 ... 붓을 다시 잡아 자신감을 회복한후
고향의 변두리 시골에 아담하게 자리한 선생님의 작업실로 찾아가 뵙게 되었다
반가움과 우리들의 전성기 옛얘기로 꽃피우며
감개무량한 만남을 가졌다
"여제자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주변사람들 말이 틀렸다"며
찾아와준 나에게 그 동안의 서운함을 토로하기에 너무나 죄스러웠고
아름다운 마음과 좋은말 덕담만을 입에 담자시던 말씀은 여전하셨다
세상의 명예도 다 쓸모없는 것이니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나만의 그림을 그리라는 충고와
자신의 공간을 오픈하여 둘터이니 언제나 들리라는 말씀을 뒤로하고
또 다시 몇해를 어영부영 지냈다
다시 지인들로 부터 나의 다녀감이 선생님의 자랑거리가 되었다며
여러차례...선생님께 찾아가 보라며 많이 기다리신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무심한 나는 곧 찾아 뵈어야지 하는 미련만을 떨고 있던중 ...
古稀고희전을 하신다는 전갈과 함께
선생님이 보내신 고희기념시집이 우편으로 도착을 하였다
그림을 그리시며 틈틈이 마음을 담아둔 글이 시집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책을 받아들고 반가움에 그 날 바로 "곧 선생님을 찾아 뵙겠다"는
인사 드리려 전화를 올렸는데 뜻밖에...
"어제저녁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듣게 되었다
아... 시간은 기다려 주지않는구나 ...
미루어 왔던 방문이...선생님의 시간이... 나를 기다려 주지않았다
곧 다시 뵙겠다던 나의 약속은 허망하게 어겨졌고
거짓말이 되어버렸으니 ...
이미 중병을 안고 계시던 선생님은 수술후 몇년간 회복이 호전되어
오랫만에 보는 제자에게 자신의 건강을 과장되게 과시를 하셨고
무심한 제자는 선생님이 투병중임을 몰랐다
생전에 몸을 아끼지 않으시고
지역 예술발전에 이바지한 업적을 길어
市의 장으로 장례식은 치루어졌고
초여름의 녹원이 짙은 산속 장지를 따라가 선생님의 무덤앞에서
나의 정신세계 일부를 낳아주신 은혜에 보답치못한 사죄의 절을 올렸다
좋아하시는 술을 가지고 다시 찾아뵙겠다고 한 그 약속을
십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또 다시 어기고 있는 쓸모없는 제자는
그래도 5월이 되면...
푸르러 오는 산을 바라보며
나의 선생님을 그린다
아이처럼 천진난만하시고 세상의 물정에 어두운
순수하고 행복하셨던 나의 선생님 ...
자신의 죽음을 바로 앞에 두고
쓸모없는 제자에게 보내온 시집속의 시들을 읽으며
선생님의 선한 심성을 닮아보려 한다
아래의 시들은 선생님의 비단그림 시집에 있는 시입니다
초가삼간
아담한 남향으로
초가삼간 집 한 채가 내 꿈이다
북에 산이 있고 남쪽엔 냇물 흐르고
사리 울에 대나무로 삽짝 만들고
온갖 과실 심어 가꾸며
봉숭화 백일홍 울밑에 심고
짚신 몇켤레 울밖에 두어
찾아온 친구들 신게 한다
할망구 술 걸러 친구들과
한 잔하며 命대로 살다가
가고 싶다
아내
입이 있어도 말이 없고
속이 상해도 표정이 없는
숭고한 忍苦(인고)의 精神(정신)이여
마음속으로 尊敬(존경)하나이다
매일같은 술시중에
忍耐(인내)로 하여
사회에 환원코자 함인가
天性(천성)의 順從(순종)으로 佛陀世界(불타세계) 깨치어
男便(남편)의 藝術世界(예술세계) 남산 벽화 이룩했다
사슴마을
사슴이 살고 있는 순한 마을에
맑고 착한 여인이
살고 있다
裸木과 상록수가
겨울 풍경 이루고
흰 눈이 내려 쌓인다
초가 지붕에도
눈이 소복쌓이고
방안에는 소근소근 정이 쌓인다
사슴이 살고 있는 사슴 마을에
착한 사람의 마음이 쌓이고
소리없이 흰 눈도 쌓인다
健康(건강)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은
靈魂(영혼)과 肉身(육신)이 헤어지는 곳
온 사람이 당해야 하는 그 마음의 고요
한 시대의 마지막 흙으로 가는 건데
분홍빛이 출렁이는 浦山(포산)의 진달래가 *포산: 태백산맥의 마지막줄기 남쪽
연록빛 綠陰(녹음)으로 사라지고 선생님의 작업실이 있는 마을산 이름
내일의 새 순을 期約(기약)하는데
자연의 침묵이여! 내일의 희망이여!
健康(건강)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선생님 건강하세요" 제자들 인사가
현실로 되느껴진다
그무엇보다 모든 所有慾(소유욕)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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