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각시 이야기

손이 심심해

울프조 2010. 1. 25. 17:11

 

손 바느질을 한뜸 한뜸 하면서 내 삶도 한걸음 한걸음 살펴보았다  

바늘 한뜸 한뜸이 모여 완성된 무엇이 되듯이

내 지난 한걸음 한걸음이 내 인생이 되어져 왔고

남은 날들도 한뜸 한뜸 나를 만들기 위해 나아가야 겠지 ... 

 

 

날이 추워 흙도 못 만지고

내 손은 쉬고 있으면 좀이 쑤셔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손이 심심하여 손을 놀리면 이런 것들이 만들어 진다

내가 아니어도 세상은 늘 많은 것들로 꽉 차 있는데

나까지 이런 것들을 만들어 주변을 지저분하게 하다니....에구~~~

 

 

 아무 쓸모없는 인형을 만들어 본다

인형 만드는 내내 내 어린 날들을 회상하게 된다 ...이러한 기억들이다

 

 

따뜻한 봄날 ...예닐곱 살 무렵 ...

까만 털실머리에 입술이 빨간 하얀 옥양목 인형을 엄마가 만들어 주시어

그것을 안고 작은 소도시의 일제시대 건물인 유리가 가득한 세무서로 혼자서 갔다

장미넝쿨을 감고 있는 쇠막대 담장에는 빨간 장미꽃이 피어 있었고

그 너머 창 넓은 건물 안에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 앞에서 분필을 들고 하얀 글을 쓰고 있는 아버지를 훔쳐보며

장미꽃 담장 아래서 인형을 안고 혼자 오랫동안 놀았던 기억이 아릿한 그리움으로 피어오른다

 

 

우리집 골목의 더 안쪽 골목 어느 집에는 한복을 만드는 집이라 늘 재봉틀 소리가 났다

그 집의 뒤 켠에는 온갖 예쁜 천들이 가득가득 버려져 있었고

아이들과 몰래 몰려가 인형옷 만들기 딱 좋을 만큼 잘라져 있는 옷감들을 집어 오곤 했다

쌓여있는 고운천들의 색감이 너무 좋아 마음이 황홀하기 까지 했다

 

 

학교를 갈 때 즈음하여 인형대신 동네의 아이들을 모아놓고 집안의 온갖 보자기와 스카프로 분장을 해

연극을 시켰다 ...물론 나는 연출자이면서 꽃을 머리에 꽂은 주인공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학예회 때는... 내가 노래를 선곡하고 몇몇 아이들에게 내가 안무한 춤을 가르치고

칠판에는 내가 그린 큰 그림을 붙여 작은 공연을 주도하기도 했다

어린 날의 내 별명중 하나는 팔방미인....

 

그리고 ...친구들에게 너무나 예쁜 종이 인형들을 만들어 주어 인기가 짱이었지

 

 

떡잎을 보면... 훗날...아주 뛰어난 무용수나 연기자나 연출자나 디자이너가 될 법도 한데

지금은 사회에 별 영양가 없는 평범한 아낙이 되었다

잠시 그림 그리기로 작은 불빛을 제법 반짝였지만 지금은 고장난 전구처럼 폐기되어 있다

 

 

그래도 큰아이 유치원시절 유치원 원장님이 나의 끼를 어찌 눈치 채었는지...권유로 인형극을 만들었다

혼자서 시나리오를 만들고 인형들을 만들고 배경그림들을 그리고 음악을 선곡하고 무대를 만들어

나레이션까지 내 목소리를 더하며...주변 끼있는 엄마들을 모아 인형극 공연을 하였다

 

 

무엇을 만들때 남들은 배우고 익혀야 할때 나는 슬쩍 스쳐 보는 것 만으로도

무엇인가를 뚝딱 잘 만들어 내는 재주를 가졌다

주변의 추임새가 아니어도 가끔 나 스스로 이런 재능에 놀라곤 한다

이런 자랑은 말로 하면 내 격에 손상이 가지만 이렇게 그림 일기를 쓰면 누가 뭐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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