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추억색
한달에 한번 미술관으로 가는길이다
경주를 접어들어 오랫만에 우회도로를 이용하니 멀리 반월성이 보인다
아직 완연한 가을색은 아니지만 따뜻한 기운이 퍼져 보이며 나를 먼 기억속으로 빨려들게 한다
익숙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니 겉잡을수없는 마음의 파동이 잔잔하게 인다
물따라 굽은 모래강변과 언덕...대나무 숲속에 숨은듯한 시골집들 ...멀리보이는 황금빛 논밭 ... 고목들....
내 옛 그림들 속에 수없이 등장한 설레이는 풍경들이다
잡힐듯 말듯한 기억의 편린들이 차창밖으로 스쳐지난다
아마 세월따라 풍경들이 변해가면 내 희미해져가는 기억들마저 잊혀져 버리겠지...
친절한 설명:고등학교시절 연습장에 그린 드로잉입니다
1994년 10월 ....... 가을의 계림숲에서
그림을 함께하는 모임에서 오랜만에 야회 스케치를 나오게 되었다
수북히 쌓인 주황빛의 낙엽을 깔고 앉아 눈익은 풍경을 화폭에 담다 문득 가을 햇살에 비치는
고목들에게서 내 유년의 모습이 부신 눈속에 어리어 잠시 붓을 멈추었다
그래 이 계림 숲은 내 어린날의 꿈을 온통 키워주던 곳이다
초등학교시절 다니는 학교이름이 계림이라하여 어린마음에 이 숲을 더 좋아하였고
향토학교다 미술대회다 하여 중고등학생때는 방학이 되면 아예 이 숲에서 매일을 살다시피 하였다
이 숲에서 열리는 그림학교에 참가하고 각종 미술대회가 있으면 방과후 그림연습을 하곤 했다
이 나무에서 저 나무 사이를 눈을 감고도 뛰어다니곤 했었다
지금은 인기있는 중견작가가 되어있는 그시절 코흘리게 남학생이 ...길게 자란 풀을 묶어두어
단발머리 여학생들의 발을 걸어 곤두박질 치게 했던 저 풀숲
무거운 화구에 길이 멀다하는 여린딸을 자전거 뒤에 태우고 저 흙길 오가던 아버지와의 추억...
등에 얼굴 묻고 혀짧은 소리내는 어리광을 그저 이뻐만 해주시던 체취는 그 시절의 꿈들과 함께
멀리 가버렸지만 "나는요 ... 피카소보다 더 그림 잘 그리는 화가가 될거라요"
"그래... 내가 너를 그림쟁이들이 살고 있는 불란서 빠리로 꼭 보내줄거다"
20년이 지난 아버지와 딸의 대화를 이 숲속의 고목들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까
태고의 이끼와 주름속에 신라 김알지의 전설을 안고 지나온 세월의 날과 내일의 이야기를 담으며
숲의 고목들은 깊은 뿌리를 이어 가겠지
나는 다시 붓을 들어 화폭에다 계림의 가을색과 내 유년의 추억색을 함께 채색하여 본다
이 글은 딸아이 초등학교 저학년시절 ...엄마의 글이 숙제라기에 ...학교로 적어보낸 글인데
어찌하여 교장선생님의 눈에 들어 지방신문에 실리게 된 어설픈 글이다
가을이 되어서인지 지난날들이 회상되고 마음이 깊어진다 ....우울은 아닌것같고 ...